학교 예술교육 활성화의 지향점
삼년 전이다. 안병만 장관이 교육과학기술부의 수장을 맡고, 문화체육관광부의 수장
을 유인촌 장관이 맡고 있을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무렵, 큰 타이틀로 “한국의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꿈꾸다”로 수식된 두 부처(部處)
공동 명의의 어느 날 보도 자료에 의하면, ‘창의성과 인성 함양을 위한 초·중등 예술교육
활성화 기본방안’으로 거기엔 A4 용지 20쪽 분량의 어마어마한 예술교육 육성 방안이
담겨져 있었다. 보도 자료의 핵심내용을 그대로 옮기면 이런 주제를 담고 있다.
○ 앞으로는 일선학교의 예술교육이 많이 달라질 전망이다. 학생들은 현대화된 예술
교실에서 음악 · 미술 등의 충실한 예술 수업을 받으며, 국어 등 일반 교과에서도 예술
수업기법이 활용된다.
○ 예술 강사 파견, 예체능 계열 대학생 봉사 확대 및 활성화를 통해 초·중등 학생들이
기존의 음악 미술 외에도 무용 연극영화 등 다양한 분야의 예술을 접할 수 있게 된다.
○ 2012년까지 예술교육선도학교를 약 1천개교 지정하고, 예술 체육중점학교는 백 개
학교까지 확대되며, 대학부설 예술영재교육원이 20개소 규모로 운영되고, 과학과 예
술을 통합적으로 교육하는 과학예술영재학교(또는 과학예술고등학교)도 1~2개교 설
립된다.
○ 문화체육관광부와 교육과학기술부는 2010년 7월 8일 공동 브리핑을 통해 이 같은
내용을 골자로 한「창의성과 인성 함양을 위한 초중등 예술교육 활성화 기본방안」을 발표
하였다. 라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그로부터 삼년 후가 지난 오늘 날, 두 부처의 공동 브리핑을 통해 발표된 이 황홀한 예
술교육 르네상스는 과연 내용대로 추진되었으며, 추진되었다면 그 진척(進陟)은 어느 정
도일까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창의성과 인성 함양을 위한 초중등 예술 교육
활성화 기본방안」 전문(全文)에 실린 추진배경에 의하면,
○ 창의·인성 함양에 있어 예술교육은 핵심요소이자 중요한 수단이기 때문에 학생이 능동
적으로 참여하는 활동을 중시하는 예술교육을 통해 창의성이 발판이 되는 '창의적 상상
력'을 배양하려고 하며,
○ 정서함양, ‘인간과 삶'을 대상으로 하는 예술의 특성상 자아성찰, 타인과의 소통, 단체
활동 등을 통해 인성 함양 기회를 제공하려 함에 있다.
○ 예술교육을 통한 창의·인성교육은 이미 전 세계적 추세이며, 선진 각국에서 창의·인성
함양을 위한 예술교육 활성화 정책을 시행 중에 있다.
○ 우리나라의 경우 예술전공학교 이외의 일반학교에서 예술교육 제공 자체가 미흡하고
타 분야와의 융합은 전무하다. 예술과목의 수능 불포함에 따른 ‘무관심’ 혹은 예술교육
활성화에 따른 ‘면학분위기 저해 우려’ 등 예술교육에 대한 부정적 시각이 상존해 있다.
추진배경에 담긴 내용을 보면 문화부의 관점에서 기술한 부분도 있고, 교과부의 시각
에서 정리한 부분도 있다. 중요한 사실은 우리나라 일반학교(예술계 학교를 제외한) 예술
교육의 현주소뿐만 아니라 예술교육의 당위성까지 크게 어긋남 없이 설명하고 있다는 점
이다.
이러한 추진배경에 의해 제시된 추진과제는 1) 교과활동에서의 예술교육을 강화하고,
2) 학교-지역사회 연계를 통한 예술교육을 강화하며, 3)예술체육 중점학교를 활성화 및
확대한다. 아울러 4) 각급 교육기관의 예술심화교육의 지원을 확대하고, 5) 과학과 예술의
통합 교육을 실시하며, 6) 예술교육 지원 협력체계를 구축 한다
나열한 추진과제에 따르면 지금이라도 우리나라는 프랑스나 이태리처럼 예술 선진국이
된 듯 하고, 21세기는 문화예술의 시대라는 아이콘에 걸맞게 환상적인 예술교육 프로그램
이 곧 이 땅에 뿌리내릴 듯하다. 그러나 갈등은 멀지 않은 곳에 있다. 교과부나 문화부가
내세운 추진과제 추진의 어려움은 바로 현실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괴리(乖離)에 있다.
많은 시간을 투자하여 우수한 두되 집단과 예술 관계자들이 골몰하여 연구한 과제이겠지
만, 전체적인 맥락에서 보면 한 마디로 탁상행정의 환상적 허상이다.
‘창의성과 인성 함양을 위한 초·중등 예술교육활성화 기본방안’은, 상당부분 업무기능을
기능을 본질적으로 달리하는 교육과학기술부와 문화체육관광부의 합작품이라는 점을 글
머리에서 밝힌 바 있다. 물론 ‘예술’과 ‘교육’이라는 공통분모를 억지로 끄집어내 ‘예술을
교육’하는 것으로 포장하여 ‘기본방안’이란 상품을 생산해 냈으나, 그것이 시대적 요구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인지, 교육적 절실함에서 머리를 맞대고 짜 낸 것인지 그 동기의 순수
성에 다소 의혹이 간다.
왜냐하면 예술교육활성화 기본방안의 직접적 추진배경은 바로 서울에서 개최된 『2010
유네스코 세계문화예술교육대회』와 시기를 같이하기 때문이다. 「21세기를 살아가는 모든
이들을 위한 문화예술교육의 가치 향상 및 강화」를 위한 목적으로 개최된 이 대회는, 예
술교육 발전목표에서 예술교육을 통한 창의·인성 계발을 강조한 이른바 《유네스코 서울
선언》을 기저로 삼고 있다는 사실이다.
직접적 추진배경이 잘 못된 것은 아니다. 문제는 이렇게 생성된 창의성과 인성함양을
위한 예술교육활성화라는 거창한 담론을 교육현장에 정작 얼마만큼 현실감 있게 착근시켜
나갈 수 있겠느냐, 하는 점이 관건이다. 그것이 바로 현실과의 괴리감을 추진과제 추진의
어려움으로 바라보고 있는 대목이다.
그렇다면 예술교육활성화 기본방안이 왜 현실과 동떨어진 것인가.
먼저, 교과활동에서의 예술교육의 강화이다. 교과활동에서 예술교육을 강화하겠다는 구
체적 내용을 들여다보면,
- 2009개정 교육과정에 의거하여 학교별로 2011년도 적용 교육과정 편성 시 음악·미술
등 예술 교과의 시수 확대를 유도하고 동 시간을 활용하여 다양한 예술 수업 모델을 적용할
예정이다 로 기술되어 있다.
여기서 지금 교육과정을 이야기 하고 있는 해당국가가 안타깝게도 오스트리아나 핀란드
가 아니다. 정말 유감스럽게도 국내 상황인 것이다. 이러한 상황의 공모자가 바로 교육과학
기술부와 문화체육관광부인 셈인데, 주범인 교육과학기술부는 이미 수년 전 7차 교육과정
도입 단계부터 서서히 음악·미술교과의 이수 단위를 축소시켜 예술교과 담당 교사들의 자연
감소를 부채질하더니, 불과 몇 년 지나지도 않은 시점에 왜 예술 교과의 시수확대를 느닷없
이 먹잇감으로 들고 나왔는가?
물론 표현상 ‘유도(誘導)’라는 완곡한 어휘를 썼지만, 그렇다고 예술 교과의 시수 확대가
현실적으로 과연 가능한 일일까? 혹시 대안학교에서라면 모를 일이지만, 아마 예술계 중․고
등학교를 예외로 하고 대한민국의 모든 중․고등학교에서 음악․미술 교과의 시수 확대를 적
용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가능하지도 않고, 설령 대담하게 모험적으로 이 시스템을 도입하
였다 하더라도, 아마 그 조직의 구성원과 학부모로부터 뭇매를 맞게 될 일이 자명하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하듯, 대한민국의 모든 교육현실은 대학입시로 통하고 있기 때문에 이 비현실
적 상황은 현실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두 번 째 추진과제가 학교-지역사회 연계를 통한 예술교육 강화이다. 학교-지역사회 연계
를 통한 예술교육은, 음악․미술교과의 시수확대보다 비교적 현실적이고 접근이 용이한 대목
이다. 또한 궁극적으로 예술교육을 강화시키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지역사회와의 연계를
적극 모색하지 않으면 정상적인 예술교육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점에서도 매우 고무적이다.
다만, 회의적인 점은 예술지도 인력의 자원 확보가 어려운 농산어촌의 사회적 환경이 결정적
아킬레스건이고, 그렇다면 학교-지역사회 연계 예술교육도 도농간 균형감을 갖고 전개해 나
갈 수 없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 엄밀하게 적용하면 이것 역시 현실적으로 전국적 확산엔
무리가 있다.
물론 회의적 시각이 옳은 판단만은 아니다. 학교-지역사회 연계 예술교육이 반드시 인력 자
원의 연계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박물관, 미술관, 문예회관, 도서관 등 다양한
문화기반 시설과의 연계를 통한 다채로운 프로그램의 체험도 소중한 예술교육의 환경이다.
그러나 이것 또한 도시 중심적 사고(思考)이고, 문화기반 시설이 확충돼 있는 도시 편향적 정
책이라는 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이 걸림돌이다. 정주 인구 2만 여명 내외의 소규모 농
촌에 변변한 문예회관이 있을 리 만무하고, 박물관은커녕 미술관조차 기대하기 어려운 문화
예술 사각지대인 현실을 감안할 때 이런 곳에서 학교를 다니고 있는 학생들에겐 그림의 떡과
같은 장치일 수밖에 없다.
추진과제의 세 번 째는 예술․체육 중점학교의 활성화와 확대이다. 오해가 있을 수 있는 과
제인데, 애써 변론하자면, 특목고인 예술고와 체육고와는 운영 형태가 본질적으로 다른 학교
이지만, 금년까지 전국적으로 1백 개교를 지정하도록 되어 있고, 분야(음악,국악,실용음악,
미술,디자인,사진,공연,영상,뮤지컬,연극,영화 등)별로 예술고등학교에 준하는 예술교과교실
을 시설하여 일반 중학교 및 고등학교 학생 중 예술․체육에 소질과 적성이 있는 학생에게 특성
화된 교육을 실시하려고 하는 내용으로 돼 있다.
다행히도 이 추진과제는 상당부분 실효를 거두고 있고, 전국적으로 예술․체육중점학교로
운영되고 있는 학교의 가시적 교육성과가 긍정적으로 평가되고 있어 제시된 추진과제 중 현장
에서 가장 알찬 내용으로 받아 들여 지고 있다. 비슷한 맥락에서 과학과 예술의 통합 교육을
실시하겠다는 과제는 이상적이긴 하나, 역시 현실과는 거리감이 있는 추진과제이고, 대학이
보유한 예술 관련 시설 및 인력을 활용하여 초․중등학생에게 심화된 예술교육을 제공하겠다는
과제도 동기부여는 그럴듯해 보이나, 실속과는 상당한 간극을 두고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또한 일반적으로 대개 관(官) 주도의 정책입안 과정에서 빼놓지 않고 등장하는 용어가 ‘구
축’이란 단어인데, 예술교육지원 협력체계를 구축하겠다는 추진과제도 어느 정도 실효를 거
둘 수 있을지 의문이다.
크게 살펴봤을 때 ‘창의성과 인성 함양을 위한 초·중등 예술교육활성화 기본방안’의 추진
과제는 이제껏 설명한 여섯 가지이다. 그 핵심은 예술교육 강화, 학교와 지역사회 연계, 예술
중점학교 육성, 예술교육 지원확대, 과학과 예술의 통합교육, 예술교육 지원체계 구축 인데
이 여섯 가지의 추진과제를 함축시키면 결국 큰 가닥으로 예술교육을 강화시키고, 그것을
위해 아낌없는 지원을 하겠다는 두 가지의 줄기이다.
이러한 내용이 보도 자료로 작성되어 각종 매체를 통해 세상에 알려진 시점으로부터 3년
이 지난 지금, 학교현장은 과연 어떻게 변화돼 있을까?
앞에서 언급 했듯이, 당시 두 부처 공동명의의 보도 자료에 의하면 2012년까지 전국적으로
1천개교의 예술교육선도학교를 지정하고, 예술·체육 중점학교를 1백개교 확대하며, 대학부설
예술영재교육원이 20개소로 운영되고, 과학예술 영재학교(과학예술고등학교)도 2개교 정도
설립한다 로 되어 있다.
유감스럽게도 실제로 계획한 방안처럼 목표한 수량을 충족시켰는지는 글쓴이가 미처 파악
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이렇게 제시된 물량적 투자와 지원 외에 현재의 4천 여
명의 초·중등학교의 예술강사를 2012년까지 7천명 규모로 파견하고, 예술강사 수혜율도 현
재의 35%에서 50%로 확대 배치한다는 방안도 포함돼 있다는 점이다.
어느 정권에서인가 과학교육의 현대화를 부르짖으며 과학교과에 집중적인 지원과 투자를
아끼지 아니하였던 시절이 있었다. 물론 그 결과 전국에 거점적으로 과학고등학교가 설립되
었다. 그러나 당초 기대했듯이 그 곳에서 배출된 인력이 과학인재로 육성되었을까. 전혀 아니
다. 소수만이 그 길을 택했고, 대부분 명문대학을 가고자 하는 지름길로 과학고를 선택하였다.
유사한 사례로 한 때 영어교육의 강화를 외치며 막대한 예산을 퍼부어 곳곳에 영어전용 교실
을 설치하고 영어가 아니면 생존할 수 없듯 올인 하더니 이제 그 강렬했던 바람은 거의 소강
상태이다. 정점을 이루었던 원어민보조교사의 충원율도 점점 하락하거나 아예 충원하지 않
고 있다.
모름지기 교육은 투자로 결실 되는 것이 아니다. 가끔은 모티베이션으로 실효를 거둘 때도
물론 있다. 그러나 교육을 정책논리로 현장에 착근시키려고 덤벼들었을 때, 그 교육정책이
성공을 보장한 경우는 매우 드물다. 대개의 정책은 정치논리를 배경에 담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따라서 대부분 실패를 담보로 한다. 예술강사의 숫적 팽장은 자칫 기능을 전수하는 예
체능학원의 교육의 질을 넘어서지 못할 수밖에 없으며 시설의 현대화는 그 프로젝트가 정착
되지 못할 때 흉물로 변하고 마는 사례를 학교현장에서 빈번히 목격할 수 있다. 엄청난 재원
(財源)을 퍼부어 댄다고 예술교육이 중흥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 일시적 현상으로 잠시 고
개를 들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우리의 학교 예술교육이 성공적인 정착을 하려면 우선 사회적 요구가
성숙돼야 하겠고, 거기에 예술담당 교사의 헌신성이 필수적으로 동반되어야 한다. 가르치는
교사의 헌신이 뒷받침 되지 않은 교육은 성공을 보장할 수 없다. 헌신은 곧 열정이기 때문이
다. 열정이 없는 예술교육에 무슨 혼(魂)이 있겠는가. 혼이 담긴 예술교육, 곧 예술교과 담당
교사들의 열정이 불을 뿜을 때 포장이 화려한 교육정책을 뛰어 넘는 확실한 결실을 보게 될
것이다.
(음악저널 2012년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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