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S

한국판 웹2.0 성공 스토리, ‘비키’에서 배운다

체리사탕 2011. 3. 5. 08:02

1972년생, 아직 마흔을 넘기지 않은 나이에 블로거닷컴과 트위터로 두 번 세상을 바꾼 에반 윌리엄스는 미국 중부의 네브라스카 출신이다. 네브라스카는 윌라 캐더의 ‘마이 안토니아’와 같은 미국 개척사 소설의 소재가 되기도 할 만큼 오지고 외진 땅이다. 그것은 역설적인 이야기다. 전세계에 디지털 소통의 혁명을 일으킨 장본인이 나고 자란 땅이 정보통신 혁명을 주도하는 미국에서 가장 소외된 지역 중 하나라는 것은.

그러나 어떻게 생각해 보면 그 곳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그가 블로거닷컴과 트위터 같은 서비스에 관심을 가질 수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인간은 반대로 행동하기 때문이다. 물이 넘쳐나는 곳에서는 물의 필요성을 모른다. 수분에 대한 갈증으로 허덕여본 사람만이 물을 얻고자 적극적으로 우물을 팔 수 있다. 그렇게 본다면 에반의 성공은 예고돼 있었다. 그에게 소통은 물과 같은 것이었고, 온라인 표현은 바로 그가 찾던 우물이었기 때문이다.

그 원리는 2010년 미국의 대표적 IT 전문지 테크크런치가 수행하는 ‘크런치 어워드’에서 구글, 페이스북과 함께 경쟁에 참가해 ‘베스트 인터내셔널’ 부문에서 1위 수상의 영광을 차지한 비키(Viki)의 경우도 예외가 아니다. 비키는 전세계 드라마, 애니메이션, 뮤직비디오 등의 영상 콘텐츠, 뉴스를 이용자들의 온라인 협업을 통해서 번역하고 자막을 붙여 전세계와 공유하는, 월 평균 방문자수 400만명이 넘는 글로벌 콘텐츠 플랫폼이다. 그러나 이 플랫폼을 시작한 사람은 정작 토종 한국인으로, 언어의 장벽에 곤란을 겪던 한 한국인 유학생이었다.

비키의 아이디어는 하버드 대학원에서 교육공학 석사 프로그램을 밟고 있던 문지원씨로부터 시작됐다. 평소 활달한 성격은 사라지고, 부족한 영어로 인해 외국인 친구들에게 수줍은 동양인 친구로 뜻하지 않던 오해를 받던 그녀는 외국어 학습을 위해서는 언어뿐 아니라 그 뿌리이자 배경이 되는 문화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깨닫게 된다. 바로 그 점에 착안해 드라마나 영화를 자막과 함께 감상하고, 또 그 실제 자막 제작 과정에 참여하는 참여를 통한 학습(learning by doing)의 필요성에 눈을 뜬다. 그러나 그 같은 학습의 가능성을 실현시켜 줄 서비스가 존재하지 않았고, 결국은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파기로 결심을 한다. 그녀는 자신의 전공을 살려 온라인상에서 이용자 협업을 통하여 자막을 제작하는 서비스의 프로토타입을 실제로 만든다. 그 이후는 곧 역사의 시작이었다.

문지원씨는 졸업 직후 비키의 아이디어를 들고 실리콘밸리로 이주해온다. 한 살 연상의 남편이자 현재 비키의 공동 대표인 호창성씨는 그 아이디어를 스탠포드 MBA 기업가 강의에서 발표한다. 그 자리에 동문 멘토로 참석했던 실리콘밸리의 벤처 투자자가 이 아이디어의 사회적 가치에 주목했다. 전세계에 문화를 통한 외국어 학습에 목마른 사람은 문지원씨 한 사람만이 아니며, 디지털 환경을 통해서 실제로 참여하는 방식으로 그 학습 목표를 달성한다는 것은 혁신적인 발상이었기 때문이다.

그 인연은 실제 투자로 이어졌다. 2008년초 시드 펀딩을 받은 비키는, 2008년 말에 웹사이트를 런칭한다. 2009년에는 드라마, 영화의 저작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전세계 콘텐츠 라이선싱 비즈니스를 이끌 수 있는 CEO를 영입한다. NBC 유니버설의 수석 부사장을 맡은 바 있었던 래즈믹이다. 성공적인 스타트업으로서 길을 가기 위한 기본적인 팀 구성이 완료된 것이다.

결국은 투자가 아닌 이윤이 장기적인 비즈니스의 생존을 보장할 수 있기 때문에, 비키는 비즈니스 모델에 대해서도 정립해 놓고 있다. 한국의 경우에는 광고 단가가 낮아 비디오 광고 시장이 제대로 형성돼 있지 않다. 그러나 미국, 유럽 같은 경우는 훌루닷컴(Hulu.com) 같은 경우 비디오 광고만으로 연매출 5천억을 남길 수 있을 만큼 비디오 광고 시작이 정착된 상황이다. 이에 따라 비키의 기본적인 비즈니스 모델은 이 비디오 광고 시장을 목표로 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프리미엄 옵션 제공을 통한 무료, 유료 서비스를 통해 수익 채널을 다각화하는 것이 골자다.

동시에 비키는 이에서 발생하는 수익은 콘텐츠 제공자와 공유해 저작권 문제를 해결한다. 애초에 이 서비스가 교육 목적으로 공익적 성격을 가지고 시작한 만큼, 무료로 영상 콘텐츠를 볼 수 있는 옵션도 계속 유지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경제적 장벽이 온라인 학습이라는 기회를 또 하나의 걸림돌로 만들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아직 트위터, 페이스북과 같은 좀 더 가시적인 성공의 단계로 이르기까지는 시간의 문제가 남아 있지만, 팀 구성과 비즈니스 모델 구축상에서는 테크크런치가 인정한 대로 고무적인 기업이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이 비키의 가장 큰 자산은 이들 창업자, 투자자, 협력사들이 아니라 이용자들이라는 사실이다. 인기 한국 드라마인 경우 한국에서 방영 직후 1시간만에 영어로, 이틀 안에 40개 이상의 언어로 자막이 달린다. 이 온라인 협업을 통해 만들어진 이용자들의 콘텐츠는 비키 시스템이 보유하고 있는 문장만도 1억개에 달한다. 이메일 인터뷰에서 비키의 제품 기획 총괄을 담당하는 문지원 대표는 이 같은 이용자들의 콘텐츠가 기계 번역의 한계를 극복하는 좋은 밑천으로 사용되고 있다고 대답했다. MS의 운영체제에 대항하는 리눅스, 브리태니커와 경쟁하는 위키피디아와 다를 바 없다. 전통적인 제조업 방식으로 불가능한 서비스를, 한국판 웹2.0의 가능성을 글로벌 한류의 맥락에서 보여준 것이다.

이렇게 비키가 이용자들의 참여를 적극적으로 이끌어낼 수 있는 데에는 경영진들의 이용자 협업 생산에 대한 이해와 지지의 힘이 컸다. 그들이 번역자들이 자기 콘텐츠에 대한 권리를 누릴 수 있도록 보호하는 정책을 펴고 있기 때문이다. 비키는 온라인상에서의 콘텐츠 공유, 확산이 법적 틀 안에서 이루어질 수 있도록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를 활용한다. 이용자의 콘텐츠가 무단으로 도용돼 다른 사람의 이름으로 출판되는 참사와 비극을 막기 위해서다. 또한 비키의 자막은 위키피디아와 마찬가지로 언제 누가 입력한 것인지 기록이 남기 때문에, 그와 같은 저작권 분쟁이 있을 경우에도 참조 용도로 사용되기도 한다. 국내 미국 드라마, 일본 애니메이션 팬들이 2차 저작물의 불법 생산이라는 명목으로 내 콘텐츠를 내 콘텐츠라 부르지 못하는 신세인 것을 생각할 때, 이같은 이용자 혁신에 대한 지지 정책의 방향성은 더욱 차별적이다. 그리고 이 차별성이 곧 비키의 이용자 혁신을 이끄는 리더십이 됐다. 그리고 그 리더십이 그들의 플랫폼이 온라인 공간을 떠도는 수많은 글로벌 한류 팬들이 머물 수 있는 둥지가 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따라서 비키는 경영진과 이용자가 함께 만든 작품이다. 경영진은 자신과 같은 문화를 통해서 언어를 배우고자 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필요를 직접적으로 알고 있었다. 그가 한 일은 그 필요를 해결하기 위한 단순하고도 분명한 방법을 쉽고 빠른 채널을 통해서 전세계인들과 공유한 것이다. 그 공유의 결과가 만약 이 회사가 직원을 고용해서 콘텐츠를 생산했거나, 혹은 생산한 콘텐츠의 양과 질에 따라 경제적 보상을 주는 시스템으로 진행했더라면 상상하기 어려웠을 수준의 방대한 콘텐츠를 단기간에 만들어 냈다.

이것은 구글, 아마존 등의 다른 웹2.0 기업의 이야기와 마찬가지로 어떻게 보면 마법처럼 들릴 수 있다. 그러나 이 마법의 진상은 깨닫고 보면 명료하다. 사람들이 돈을 버는 이유는 그것을 자신 혹은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쓰기 위해서다. 다시 말하면, 그들은 돈으로 얻을 수 없는 가치를 얻기 위해 돈을 쓰고 있다. 비키, 혹은 이와 유사한 소위 오픈의 정신을 가지고 있는 서비스들이 하는 일은 이 돈을 매개로 하지 않고도 그같은 가치를 얻을 수 있도록 이용자들을 돕는 것이다. 그 결과가 돈으로 정의되지 않는 수많은 동기를 가진 사람들을 자극하고 그들을 한데 모은 것이다.

사이버 공간에는 수많은 글로벌 한류 팬들이 존재한다. 이 글로벌 한류 팬을 고려하지 않더라도, 실무적인 필요상에서 한국어 혹은 다른 언어를 좀 더 문화 중심적인 방법으로 배우고자 하는 수요도 존재한다. 아니면, 그저 다양한 문화를 체험하고자 하는 사람들도 있다. 비키가 이들을 만든 것이 아니다. 비키는 그들이 찾던 것을, 그들이 필요로 하던 것을 제공해준 것이다. 창업자 문지원씨는 처음부터 비키의 플랫폼 제공자일 뿐 아니라 콘텐츠 생산자요, 이용자였다. 그 시작의 차이, 혹은 관점의 차이가 결과의 차이를 만들었다. 팔기 위해서 만든 것이 아니라 쓰기 위해서 만든 서비스는 소비자의 관점에서는 모을 수 없는 수많은 이용자들을 모을 수 있었고, 그들과 함께 서비스를 성장 시킬 수 있었다. 비키는 그같은 ‘이용자 혁신’의 방향성을 가지고 있었다.

실제로, 이메일 인터뷰에서 문지원씨는 정보산업 자체가 진보와 혁신을 기반으로 하며, 바른 방향이 아닐 경우에는 머잖아 바른 방향을 가진 후발 주자에 의해 점령당하는 특성이 있다고 언급했다. 그녀는 그것이 이 시장의 경쟁 구도의 ‘멋진 승부’라고까지 표현했다. 그러면서 비키의 경영진으로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기준을 그 ‘나아가야 할 바른 방향’을 잊지 않는 것이라고 했다. 전세계에서 글로벌 한류 팬을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는 웹사이트이지만 마케팅 비용은 써본 적이 없는 비키는 그 같은 경영진들의 시각이 만들어낸 것이었다.

이 한국판 웹2.0 성공 스토리, ‘비키’에게서 우리가, 특별히 주춤하고 있는 국내 대형 포털을 비롯한 인터넷 서비스 제공업자들이 배워야 할 것은 크게 두 가지다.

첫 번째는 여타의 인터뷰에서 호창성 대표가 강조했던 것처럼, 세계 무대를 노려야 한다는 것이다. 1995년 MIT 미디어랩의 설립자 니콜라스 네그로폰테가 그의 예언서 ‘디지털이다’(Being Digital)을 발표했을 때, 그는 디지털 혁명을 이끄는 힘으로 탈중심화, 세계화, 조화력, 분권화를 강조했었다. 그 중에서 우리가 종종 간과하는 것이 ‘세계화’이다. 국내 시장을 정복하는 서비스가 아니라 세계 시장을 석권할 수 있는 서비스를 만들어야 한다. 적어도 오픈과 소셜의 트렌드를 반영하는 서비스를 만들고 싶다면, 그 서비스들의 무대는 세계이며, 이용자들이 전세계에서 온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그 점에서 볼 때, 세계 무대를 노려야 하는 까닭은 단순히 그 곳에 더 큰 시장이 있기 때문이다. 그 곳에 이 서비스를 함께 성장시킬 수 있는 더 많은 이용자들, 참여자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이 그 서비스의 가치를 더 풍성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세계 무대에 도전하기 위한 시각의 전환이다. 공급자 중심의 관점으로는 이용자 참여로 서비스의 틀을 만들어 가는 오픈과 소셜의 전세계 IT 트렌드를 앞서나가는 것은 물론이고 따라잡기도 어렵다. 동시에 이 같은 트렌드는 기술적인 관점에서보다 ‘팬 문화’, ‘참여 문화’와 같은 문화적인 트렌드에서 더 많은 것들을 이해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바이럴 마케팅’ 같은 웹2.0의 기술적 특성에 초점을 맞춘 마케팅 관점들의 한계는 그 안에서도 이용자는 여전히 특정 콘텐츠를 자기 복제하는 대상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이용자들은 그 콘텐츠를 가지고 비키의 예에서 보여지는 것처럼 자막 제작 등의 각종 이용자 2차 창작물들을 만들어 낸다. 따라서 글로벌 서비스를 기획하는 사람들이라면 이같은 큰 문화적인 트렌드를 어떻게 적극적으로 찾아낼 수 있을지, 수용할 수 있을지를 고심해야 한다. 디지털 전략가 마이크 아우레즈가 말한 것처럼 “내가 내 페이스북 친구에게 어떤 브랜드에 대해 이야기한다면, 그것은 내가 그 브랜드를 좋아해서가 아니라 내 친구를 좋아해서”이다. 공급자를 넘어서 그 대상, 소비자가 아닌 이용자, 이용자가 아닌 인간의 필요와 욕망을 볼 수 있어야 기존 시장에 파괴적 혁신을 불러 일으킬 수 있는 혹은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낼 수 있는 새로운 상품과 서비스를 만들 수 있다.

결론적으로, 비키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이것이다. 남에게 팔기 위한 서비스가 아니라 자신이 쓰기 위한 서비스를 만들어라. 그리고 그것을 나누라. 이제 전세계가 우리의 시장이 아니라, 전세계가 우리의 협력자다. 이제는 그들과 함께 만드는 더 큰 미래를 꿈꿀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