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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시대 예술가의 명강의'

체리사탕 2011. 3. 22. 14:00

'우리시대 예술가의 명강의' 이어령, "예술을 뒤집어서, 삶을 뒤집어서 봅시다

 

 

 

예술을 뒤집어서 볼 때 진정한 의미를 깨달을 수 있다고 이어령은 말한다.

전 문화부장관이자 현재 문학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는 이어령(78) 선생이 14일 오후 4시 서울 대학로 예술가의집 다목적홀에서 ‘예술 뒤집어 보기-성냥팔이 소녀는 왜 죽었지?’를 주제로 강의를 했다.

이번 강의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ARKO, 이하 아르코)가 진행하는 ‘우리시대 예술가의 명강의’ 중 첫 번째로 진행된 것으로, 명강의 시리즈는 우리시대를 살고 있는 예술가들의 진솔한 이야기를 통해 예술가로서의 인생과 작품 세계를 들어보는 프로그램이다.

이날 예술가의집 홈페이지를 통해 미리 수강 신청을 한 120여 명의 일반인들이 이어령 선생의 강의를 듣기 위해 한 자리에 모였다.

이어령 선생은 단상마련된 의자에 앉는 것을 사양하고 오후 4시부터 한 시간 반 동안 내내 일어선 채로 강의를 했다. “내가 앉으면 뒤에 있는 사람은 나를 보지 못하고 목소리만 들을 것 아니냐. 언어는 소리만으로 전달되는 것이 아니다”고 말하며 단 한 번도 자리에 앉지 않고 서서 강의를 진행했다. 여든을 바라다보는 나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체력이었다.

선생은 이번 강의를 맡게 된 이유에 대해 “문학방법론을 포함해 그 동안 내가 알고 있던 것들을 총정리하고 싶다”며 “마지막 수업이라는 생각으로, 옛 것은 정리하고 새 것은 새롭게 간직하겠다”고 말했다. 덧붙여 “전문적이고 수준 높으면서도 쉬운, 모두가 알아들을 수 있는 강의를 하겠다”고 강조했다.

ⓒ 유니온프레스 최진영 기자


강의 주제인 ‘예술을 뒤집어 본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이어령 선생은 ‘뒤집는다는 것’을 자동차의 엑셀과 브레이크에 비유했다. 그에 따르면 엑셀을 밟고 가다가 갑자기 브레이크를 밟으면 차가 뒤집힌다. 그리고 그것은 카오스와 같다. 선생은 “카오스 없는 예술은 없다. 예술은 머릿속에 정리된 생각들을 뒤죽박죽으로 만들고 그 속에서 새로운 원동력을 만들어낸다”고 말했다.

선생에 따르면 "모든 문학(예술)은 겉은 깨끗하지만 그 속에는 아이러니하게도 슬픔과 고통이 잠재해 있다"고 말한다. 이 때 잠재된 슬픔과 고통을 발견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어령 선생은 "환한 곳에 가득찬 빛보다 어두운 터널 저 끝에 보이는 바늘 끝 같은 빛이 더 소중하게 느껴진다"고 말한다. 또한 문학은 그 내용에 '살자(사는 것)'와 '죽음'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여기에서 죽음은 생명을 태어나게 하는 필수적인 존재로서 '살자'와 마찬가지로 중요하다.

따라서 예술을 뒤집어서 본다는 것은 예술의 표면적인 아름다움만을 보는 것이 아니라 아름다운 것과 대비되는 그림자나 슬픔과 고통, 죽음 따위마저 파악해내며 작품을 읽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리라 짐작된다.

이어령 선생은 모두가 알고 있는 시, 김소월의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를 소재로 끌어왔다. 그는 시에서 특히 '공간' 개념에 주목하며, ‘엄마야 누나야’에서 드러나는 공간은 생명의 공간이며 시에 드러나지 않는 ‘아버지’나 ‘형님’의 공간은 도시와 투쟁의 공간이라고 설명했다.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를 뒤집어 보면 “아빠야 형님아 나도 남자로 태어났지만 남자가 싫다’라는 것을 읽을 수 있다”고 선생은 말했다.

사실 이 시는 전체가 철저히 대비로 이뤄져 있다. ‘뜰에는 반짝이는 금모래 빛, 뒷문 밖에는 갈잎의 노래’ 에서 ‘뜰’은 앞을, ‘뒷문 밖’은 뒤를, ‘모래’는 작은 입자인 동시에 무기물로, '갈잎'은 넓은 잎을 가진 동시에 유기물이다. '모래'의 황금색과 '잎'의 초록색이 대비되고 ‘빛’이라는 시각과 ‘바람’이라는 청각적 이미지 역시 대비를 이루고 있다.

ⓒ 유니온프레스 최진영 기자


강의를 시작한 후 약 1시간 15분이 지났을 무렵 드디어 이어령 선생은 ‘성냥팔이 소녀는 왜 죽었지?’라는 질문을 던졌다. 그리고 이 이야기를 삶의 문제로까지 확장시켜 보았다. 이야기를 뒤집어 본 것이다.

성냥팔이 소녀 이야기에서는 남성과 여성의 힘이 균형을 이루지 못한다.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할머니와 어머니, 소녀 모두 여성이다. 이야기 속 유일한 남성인 아버지가 등장하는 부분은 소녀가 성냥을 팔지 못하고 집에 돌아갔을 때 소녀를 때리는 장면뿐. 성냥팔이 소녀는 아버지에게 맞을 것이 두려워 추운 곳에서 얼어죽었을 것이라고 이어령 선생은 분석했다. 

이어 선생은 성냥팔이 소녀 이야기를 현 사회 문제로 확장시키며 "아버지가 부재하는 사회, 아이를 낳지 않아 생명이 부재하는 사회, 사용가치만 있고 가장 중요한 생명가치가 없는 사회"를 꼬집어 비판했다.

마지막으로 선생은 '뒤집어 볼 것'을 다시 한 번 강조했다. "예술을 뒤집어 보면서 삶을 뒤집어 보라. 현재 살고 있는 생(生)을 단 1초라도 나의 삶 속에서 느껴보라"라고 말하며 강의를 끝마쳤다. 

한편 예술가의집에서 열리는 명강의 시리즈는 매월 문학, 시각예술, 공연예술분야 등의 저명한 예술가를 초빙해 진행되며 4월에는 소나무 사진작가로 유명한 배병우 씨의 ‘카메라로 그리는 수묵화 이야기’(4월 4일), 5월에는 유니버셜발레단 단장 문훈숙 씨의 ‘문훈숙의 발레이야기’(5월 16일)가 예정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