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감성이 오가고 아름다운 변화가 동반돼야 진짜 소통

체리사탕 2011. 4. 9. 20:00

[명강의를 찾아서] "감성이 오가고 아름다운 변화가 동반돼야 진짜 소통"


트위터 페이스북 등 소통의 수단들은 도처에 널려있고 이용자들도 급증하고 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불통(不通)의 시대'에 살고 있다. 적지 않은 시간과 비용을 투자하면 소통이 저절로 될 걸로 믿는 이들이 태반이나, 그런 기대는 허망할지 모른다. 최첨단 미디어와 최신 전자기기를 장착했지만, 오히려 우리는 더 많은 거짓정보와 일방적 전달, 몰이해에 포위돼 불신과 불통의 문제에 직면해 있기 때문이다.

70만 명에 육박하는 트위터 팔로워를 거느려 '소통의 대가'로 불리는 작가 이외수에겐 이런 현상이 안타깝게 다가온다. 그는 "일방통행식 소통, 마음이 담기지 않은 소통이 불통의 주범"이라고 단언했다. 문화체육관광부 주최로 지난 1일 서울 종로구 와룡동 문화부 대강당에서 열린 '소통의 달인에게 듣는 대국민 소통법' 강의에서 그는 "뜻이 오고 가야만 소통이란 단어가 성립하며, 변화가 동반돼야 비로소 소통이 완성된다"고 힘주어 말했다.

이외수가 생각하는 소통은 어떤 것일까. 상명하달식이 최대 장애물이며, 영어 표현으로 '기브 앤 테이크'가 기본이라고 했다. 이씨는 "일단 의미가 서로 전달돼야 소통의 기본 요건이 갖춰진다"며 "소통의 완성은 오고 가는 것에 그치지 않고 소통을 통해 아름다운 변화가 생겨야 하며, 궁극적으론 삶의 질을 변화시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소통은 삶을 업그레이드 시키기 위한 변화의 몸짓이라는 논리다.

소통은 어디에서 출발할까. 정보가 풍부하면 소통이 더 잘 이루어질 수 있을까. 그는 단호히 "아니다"고 말했다. 그는 "인터넷으로 상징되는 정보혁명 이후 우리는 오히려 소통의 제한성을 발견했다"고 해석한 프랑스의 석학 도미니크 불통(Dominique Wolton)과 견해를 같이한다고 했다. 기술의 혁신, 정보의 확산에만 몰입하면 서로에 대한 배려, 이해가 부족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지금 사람들이 50년 전보다 소통을 더 잘하고 있는지 의문"이라고 했다. 한마디로 기술의 발전과 소통은 비례하지 않는다는 시각이다.

그는 해법을 '감성(感性)'에서 찾고자 했다. "소통은 머리에서 나오지 않는다. 가슴에서 나온다"는 진단이다. 초고속 인터넷 보급률이 세계 최고 수준인 우리나라가 소통 부재라는 사회적 문제를 안고 있는 이유도 '감성 소통'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갑자기 이날 강연의 주최자인 문화체육관광부를 도마에 올렸다. 그는 "문화와 예술이 발전하고 감성이 계발돼야 소통 또한 자연스럽게 뿌리를 내리게 된다"고 전제한 뒤 "그런데 문화체육관광부를 보면 그게 불가능하다는 인식을 하게 된다"고 일갈했다. "사실 문화만 해도 어마어마할 만큼 범위가 넓다. 그런데 체육까지 합쳤고 이것도 모자라 관광을 더했다. 이게 과연 가능한가. 엄청난 모순이다. 이런 정책을 쓰는 나라가 있는지 알 수 없으나 우리나라니까 가능한 게 아닐까 한다." 이런 '짬봉 구조'에서 소통이 제대로 되는 것을 바라는 것 자체가 넌센스라는 일침이었다.

그는 "모든 인간은 행복해지기 위해 산다"는 고대 그리스 철학자 소크라테스의 말을 인용하며 "내 안에 많은 아름다움이 간직돼 있어 수많은 것들로부터 사랑받고 수많은 것들을 사랑할 수 있어야 궁극적인 행복이 가능하다. 그 행복의 핵심에 아름다움이 있고 예술이 있다. 그런 점에서 21세기는 감성이 주도하는 시대다"고 말했다. 소통의 근본이 감성이라는 것이다.

교육과학부 공무원이라고 소개한 한 참석자가 "소통을 위해 어떤 교육이 필요하느냐"고 물었다. 이씨는 감성 교육을 거듭 역설했다. "대한민국의 교육에서 행복과 아름다움이라는 소중한 명제는 자취를 감추었다. 오로지 성적만 있을 뿐이다. 아름다움을 창조하는데 가장 중요한 요소이자 소통의 핵심이며 행복과 직결되는 감성교육이 어렸을 때부터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선진국이 되더라도 소통은 먼 나라 얘기가 될 것이다."

"통일이 되더라도 남북한 주민간 인식의 격차가 클 것이다. 남북간 소통, 통합을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도 나왔다. 잠시 머뭇거리던 이씨는 담담하게 자신의 견해를 밝혔다. "공산주의 사회에선 예술을 포함한 모든 영역이 정치적 도구로 쓰이기 때문에 창의성이나 진정한 아름다움 따위는 없다. 예술 자체가 정치적 도구에 불과하다. 북한에서 예술적 자산은 철저히 썩고 있다고 본다. 나중에 통일이 돼 예술가들의 재능을 자유롭게 펼치는 장이 마련된다면 이걸 바탕으로 남북 소통에 필요한 감성교육이 자연스럽게 이뤄질 것이다."

2시간여 동안 진행된 작가 이외수의 소통 강의를 압축하면, 첨단 미디어에 단순히 의존하거나 어느 한쪽의 얘기만 전달하는 일방통행은 십중팔구 실패한다는 사실이다. 감성을 바탕으로 서로를 이해하고 배려하는 양방향 소통이야말로 우리가 추구해야 할 가치이자 방법론이라는 것이다. 이날 청중 대부분은 우리 사회에서 소통하기 어려운 대상 중 하나로 꼽히는 공무원들이었지만, 이외수 씨의 소통학 강의가 끝나자 뜨거운 박수로 화답했다.

 


이외수 트위터 팔로워 70만명… 1990년대 PC통신 때부터 독자와 교류

이외수 씨는 독자와의 소통을 일상화한 대표적인 작가다. 그는 1990년대 초반 PC통신 시절부터 독자들을 꾸준히 만나왔다. 트위터 팔로워가 70만 명의 밑천이 PC통신이었던 셈이다. 이씨는 "트위터는 140자 제한 때문에 작가에겐 일종의 습작 공간이자, 독자들과 압축된 대화를 하는데 최적의 조건을 제공한다"며 트위터 예찬론을 펼쳤다. 작가 입장에서 알맹이만 쏙 발라낸 문장을 써야 하니 이만큼 실전 대비가 되는 곳이 또 어디 있겠느냐는 얘기다.

그는 "트위터엔 머리보다는 마음으로 쓴 문장을 구사하고 있다"며 감성 소통, 쌍방향 소통을 강조했다. 이씨는 자신이 일방형 소통 작가였다면 화천산 찐빵 5,000상자는 팔지 못했을 거라고 했다. "왠 찐빵?"이라는 질문이 나왔다. 답은 이랬다. "내가 사는 강원 화천은 산천어 축제가 유명하고 그걸로 주민들이 거의 1년을 먹고 산다. 그런데 지난 겨울 구제역으로 축제가 취소됐다. 축제에 대비해 만든 찐빵도 판로가 막혔다. 주민들의 생계가 막막했지. 트위터에 '화천이 경제적으로 어렵다'고 호소하고 이유를 묻는 팔로워들에게 일일이 설명했다. 이게 팔로워들의 마음을 움직이게 해 이틀 만에 찐빵 5,000상자를 팔았다."

이외수 씨의 트위터 소통은 재미도 있다. 한 예를 들어보자. 팔로워의 질문, "주인을 할퀼 때만 앙칼지게 발톱을 곤두세우는 고양이, 주인을 경계할 때만 표독스럽게 이빨을 드러내는 개들이 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씨 대답, "본분을 잊은 시대입니다. 고양이는 발톱을 모조리 뽑아 버리고, 개들은 턱뼈를 탈골시켜 버리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