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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은 ‘나누는 공부’며 ‘진을 빼는 정열’

체리사탕 2007. 6. 23. 07:42
임정현기자

한국이 낳은 세계적 클래식 스타, 장한나씨. 최근 여론조사에서 성악가 조수미, 바이올리니스트 장영주, 지휘자 정명훈씨를 제치고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클래식 음악가로 뽑힐 정도로 인기가 높다. 하지만 그의 베이스 캠프가 미국 뉴욕이어서 직접 만나기가 쉽지 않다. 그나마 뉴욕 집에 있는 날보다 다른 나라, 도시에 있는 날이 더 많다. 국내 연주회가 있거나, 큰 상을 타고, 새 앨범이 나오는 등 사안이 있을 때마다 뉴욕이나 연주여행 중인 호텔을 찾아 전화로 그를 만났다. 한국에서 잠깐 있는 일정에 개인적 인터뷰 시간을 쪼개기 어려워 주로 공동인터뷰를 한다.

그러나 지난달 20일 성남아트센터에서 지휘자로 데뷔하기 위해 귀국한 장씨는 올여름부터 MBC와 베토벤 교향곡 9곡 전곡 지휘 프로젝트에 들어가 제주시향, 서울시향을 지휘하고, 이를 위한 해설을 녹화하는 등 이번 국내 일정은 20여일이 될 정도로 길었다. 그래서 공식일정이 모두 끝난 지난 10일 장씨의 스케줄에 ‘구멍’을 내 그가 묵고 있던 호텔 클럽에서 직접 만날 기회를 잡았다.

이 ‘명랑하고 진지한 젊은 예술 철학자’와 항상 그래왔지만, 이날은 음악에 대해 좀 더 깊은 본질적인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전화통화는 어딘지 좀 사무적이고, 거리감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먼저 ‘장한나씨, 당신은 지금 누구인가. 첼리스트인가, 지휘자인가, 철학도인가, 교육자인가 그게 아니라면 어떤 사람인가’라고 물었다. 엉뚱한 질문에 좀 당황한 기색이다. 그러나 금방 여유를 찾고 “지휘자로 데뷔한 뒤 많은 사람들이 내가 (첼로와) 지휘를 병행할 것인지 궁금한가 보다”며 “하는 일도, 하고 싶은 일도 음악가”라고 차분하게 말했다.

첼로연주뿐 아니라 지휘, 해설, 교육 등 다양한 부분에 대한 계속적인 활동 여지를 두는 말로 들렸다. 그래서 첼로 하나에 전념해도 부족한데 많은 곳에 관심을 둬 염려하는 사람이 있다고 구체적으로 전했다. 하지만 그는 “가장 큰 문제는 (나의) 음악성 성장”이라며 이에 동의하지 않았다.

“첼로 레퍼토리는 한계가 있습니다. 같은 곡을 50, 60년 연주한다고 음악성이 성장할 것 같지 않습니다. 그래서 많은 첼리스트 선생님들이 지휘에 도전한 것 같습니다. 카잘스, 로스트로포비치 선생님이 그랬고, 토스카니니는 완전히 지휘로 전향했죠. 제가 첼로만 했으면 1994년에 (로스트로포비치 콩쿠르에서) 1등하지 못했을 겁니다. 첼로 연주하고 음악 듣고 발레 보는 게 (제겐) 모두 음악공부였습니다. 다른 것을 하는 것이 저의 음악성 성장에 도움이 되면 됐지 절대로 해가 될 수 없습니다.”

그는 이어 “음악은 나누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스스로를 갈고 닦아 나눠야 할 것이 있어야 합니다. 스스로에게 투자해야 합니다. 번스타인이 지휘하는 것을 보면 감동적입니다. 혼신의 힘을 다해 너무나도 아낌없이 나누고 있습니다. 음악은 ‘나누는 공부’이고 ‘진을 빼는 정열’이라고 생각합니다.”

장씨는 또 “음악은 결국 조화(調和)”라고 덧붙였다. “솔리스트도 혼자는 못합니다. 오케스트라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나만의 영광은 없죠. 다른 사람과 공존해야 합니다. 100명의 연주를 같은 생각으로, 하나의 악기로 묶어내는 것이 지휘인 것 같습니다.”

그는 특히 “음악가에겐 이 정도면 됐다고 생각하는 게 치명적이다”며 “믿음을 갖고 끝없이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베토벤의 첼로 작품이 5곡밖에 없지만 그 곡을 완전히 연주하기 위해서는 교향곡은 물론 현악4중주 등 다른 작품도 공부해야 합니다. 첼로 작품이 다른 작품과 완전히 다르지만 결코 별개의 음악은 아닙니다. (제가) 10대 때부터 연주해왔지만 스물네살인 지금 제가 연주하는 것과 다를 것입니다. 앞으로 마흔네살에 연주하는 것이 또 다를 겁니다. 음악은 저만 편해지자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니 연주자는 결코 편해선 안됩니다. 어려운 공부를 끝내면 해석도 따라서 올라옵니다.”

현재 그가 집중하고 있는 것은 베토벤이다. MBC와 베토벤 교향곡 9곡 전곡을 지휘하고 해설하는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기도 하다.

“베토벤에 심취, 본격적으로 공부한 것이 3,4년 되는 것 같습니다. 모차르트, 하이든이 완벽한 형식을 만들었습니다. 브람스, 말러, 슈트라우스, 바그너 모두 깊고 넓은 음악가들입니다. 그러나 베토벤은 음악의 틀 자체를 다시 만든 위대한 음악가입니다. 베토벤이 없었다면 현재의 클래식은 없었을 겁니다.”

장씨는 베토벤 공부의 이유에 대해 이같이 말하며 “특히 귀머거리 작곡가로 외부소리가 아니라 내면에 귀를 기울여 음악을 뽑아냈다”면서 “정말 1%의 천재와 99%의 노력으로 만들어진 위대한 음악가”라고 예찬했다.

그는 베토벤 음악 분석 서적 10여권을 비롯해 그와 관련된 서적 30여권을 읽었다. ‘얇은’ 500쪽짜리에서 좀 두꺼운 2000여쪽짜리도 있다. 그제서야 비로소 “베토벤이 어떤 사람인지 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문득 베토벤의 ‘불멸의 연인’이 누구라고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베토벤은 항상 누구가를 사랑하고 있었어요. ‘불멸의 연인’이라고 부른 여인이 있었죠. 정확히 밝히지는 않았습니다. 베티나 브렌타노스, 조세핀 다임 등을 특히 사랑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그는 정상적으로 누구하고 사랑하는 것을 꾸밀 수도 없었고, 그것이 자신의 예술에 대한 사랑에 걸림돌이 된다는 것도 알았던 것 같아요. 또 그는 자신보다 층이 높은 귀족여인들을 사랑했는데 아마 (그들이 베토벤의 사랑을) 허락할 수 없었을 겁니다. 이와 함께 천재의 기운이 느껴지는 멋진 베토벤 조각들은 그의 데드마스크로 만들어진 것이고, 사실 좀 못생겼다고도 해요. 옷차림도 하나만 찢어질 때까지 입었다고 하네요. 새옷을 사서 걸어놔도 그 옷이 새옷인지도 모르고 다 해질 때까지 그 옷만 입었다고 합니다.”

베토벤의 ‘불멸의 연인’이 나온 김에 장씨의 ‘불멸의 연인상’에 대해 물었다. 그는 ‘까르르’ 웃으며 “모르겠다”면서도 할 말은 다했다.

“(시간이 없어) 대상을 만날 수 있어야지요. 보통사람이 추측하는 사람과 다 똑같을 겁니다. 굳이 대답하면 멋있는 사람, 특히 마음이 커야 합니다. 솔직한 사람, 정직한 사람, 스스로한테나 남한테 뚜렷한 목표를 갖고 사는 사람, 나 이거 하고 싶다고 솔직하게 말하는 사람요.”

음악은 무엇일까. 우리 삶에서 음악은 어떻게 기능할까.

“가장 솔직한 숨김없는 커뮤니케이션 같아요. 또 우리 삶 모든 것에 음악이 들어 있어요. 휴대전화만하더라도 음악이 없으면 작동할까요? 만약 작동할 수 있다고 해도 삭막하겠죠. 사람은 지식으로만 살 수 없습니다. 감정적이니까요. 행복하게 살기 위해 음악이 꼭 필요합니다. 여기서 대중음악, 클래식 음악을 굳이 구분할 필요는 없어요. 사람들은 음악을 들으며 마치 사춘기 성장통을 앓듯 좀 더 수준높은 음악을 찾아가기 마련입니다. 여기에 맞추기 위해 저희 같은 사람들은 최상의 연주를 위해 노력합니다.”

장씨는 특히 어린이들을 좋아한다. 이번 프로젝트도 사실 어린이들을 위한 것이다. 스스로가 어린이처럼 맑기 때문일까.

“순수하잖아요. 저랑 제일 잘 통하는 것 같아요. 장난기도 있고 호기심도 많고 조금 친해지면 아무 스스럼 없이 친해질 수 있어요. 언젠가는 연주를 했더니 저한테 ‘골룸’ 같다고 하더라구요. 당시 골룸이 뭔지도 몰랐죠. 나중에 ‘반지의 제왕’을 보고 골룸이 누구인지 알았는데 혼자 얼마나 웃었다고요. 애들 아니면 누가 제게 골룸 같다고 했겠어요. 그리고 그 말을 듣고 제가 또 즐겁게 웃을 수 있겠어요.”

장씨는 “30분 동안에 아이들에게 가장 가치 있는 경험을 할 수 있는 것은 바로 베토벤 음악듣기”라고 했다.

“베토벤 교향곡 1번은 1800년, 2번은 1801년, 3번 ‘영웅’이 1802년에 만들어졌습니다. 이런 비유가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1, 2번이 올림픽 은메달, 동메달이라면 3번은 완전히 금메달이에요. 껍질을 벗고 나비가 됐다고 할까요. 베토벤이 ‘모든 사람이 내 형제’라며 ‘인류에게 보내는 나의 입맞춤’이라는 말이 실감납니다. 채팅이나 컵라면 먹기 등을 할 수 있는 시간에 아이들에게 너무나도 충격적인 감동을 줄 수 있는 것이 바로 베토벤의 교향곡 ‘영웅’입니다.”

클래식 음악의 가장 큰 교육적 가치는 무엇일까 궁금했다.

“아마 슬픔의 힘을 알게 하는 것 아닐까요. 진짜 슬픈 일을 당하면 얼마나 힘들겠어요. 예술을 통해 슬픔을 경험한다면 (필요없는 고통 없이) 효과적으로 감수성의 그릇을 키울 수 있을 겁니다. 음악이나 삶의 요체는 결국 밸런스(balance·조화) 아닌가요.”

문화부장 hyeon@munhwa.com

■첼리스트 장한나는…

- 1982년 경기 수원 출생

- 2002년 하버드대 철학과 입학

- 1994년 로스트로포비치 첼로콩쿠르 최우수상, 현대음악상

- 1995년 EMI서 최연소 첼리스트 데뷔앨범 로스트로포비치와 런던심포니와 함께 녹음. 이 음반은 1997년 에코음반상 올해의 영아티스트 상 수상

- 1998년 두번째 앨범 하이든 첼로협주곡(주세페 시노폴리 지휘,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가 협연)

- 2000년 세번째 앨범 ‘백조’ 세계적 권위의 클래식 음악전문잡지 독일 그라모폰의 ‘에디터스 초이스(Editor’s Choice)’ 음반 선정, 미국 빌보드차트 클래식 부문 8위

- 2002년 네번째 앨범 프로코피예프 그라모폰 ‘2003년도 최고의 협주곡 음반’ 선정, 독일음반협회 2003년도 에코 클래식 ‘올해의 협주곡 최고음반상(Concerto of the Year)’ 수상, 제10회 프랑스 칸어워드 우승

- 2005년 다섯번째 음반 쇼스타코비치

- 2006년 그라모폰, 미래의 음악계를 짊어지고 나갈 세계의 젊은 연주인 ‘내일의 클래식 슈퍼스타’ 20인으로 장한나 선정

- 주세페 시노폴리, 로린 마젤, 마리스 얀손스, 리카르도 무티, 안토니오 파파노, 크리스토프 에센바흐 등 세계적 지휘자와 베를린 필, 뉴욕 필, 런던 심포니,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 등 세계 정상의 오케스트라와 협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