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관계에 있어 기폭제가 되는 것들이 있다. 예를 들어 흡연, 종교, 혹은 금전적인 것 등이다. 오늘날에는 여기에 한가지 요인을 더 첨부해야한다. 바로 ‘기술[IT]’이다.
이번주 어느 밤, 남편과 나는 지난 몇년 동안 우리가 겪었온 일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남편 조는 내게 “가끔 당신의 몸은 여기 있는데, 마치 정신은 이곳에 없는 것 같다”며, “당신의 마음과 영혼은 온통 사이버공간에 있고, 이곳에 남겨둔 것은 오직 껍데기뿐이다”고 말했다.
아버지가 가족여행 중 휴대폰으로 전화 회의에 참여하든, 십대 자녀들이 테이블 밑에서 문자를 보내든, 엄마들이 축구장 한 켠에서 페이스북을 확인하든, IT는 어떤형태로든지 미국 내 대부분의 가정 생활에 장애물이 되고 있다. 어디에서나 더 쉽게 온라인에 접근할 수 있게 되면서, 상황은 점차 더 악화되고 있다.
* * *
나는 너무 많이 “온라인상”에 있다. 이메일을 확인하고, 페이스북을 확인하고, 트위터를 확인하고, 다시 이메일을 확인한다. 물론 내가 직장을 다니고, 하루 종일 베이비시터와 문자를 주고 받아야한다는 핑계가 있긴 하다. 또한 기술적인 부분들은 나의 직업적인 이유에서 필요하기도 한다. 비단 나는 종종 소셜 미디어에 관한 글을 쓸때 뿐만 아니라, 재택근무를 해야할 때도 IT기술은 꼭 필요하다.
물론 나는 일을 하거나 아이들 돌보기 위해 필요한 것보다, 더 많이 인터넷에 접속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종종 나는 현실에서 쉽게 아이들을 얼굴을 볼 수 있을 때 조차, 하릴없이 페이스북에 접속해 내가 올렸던 아이들의 사진을 멍하니 쳐다 보곤 한다. 이런 고백이 자랑스럽진 않다.
조는 신기술을 반대하는 입장은 아니다. 반대로 그는 정말 기술전문가이다. 이런면에서 어쩌면 우리 둘이 서로 관심을 공유할 수 있다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우리는 철저히 다른 입장이다.
그는 전자기기를 무척 좋아한다. 조 덕분에 우리는 훌루사이트 동영상을 재생하고, 넷플릭스에 접속하며, 고화질의 디지털 비디오를 녹화할 수 있는 TV를 보며 시간을 보내곤 한다. (이런 TV를 작동시켜 뉴스를 틀 수 있는 방법을 알게 되면 나는 운이 좋은 것이다)
반면 나는 인터넷을 통해 서로 대화할 수 있다는 점을 무척 좋아한다. 나는 페이스북 덕분에 내 아이들의 생일 잔치 사진을 페이스푹에 푹 빠진 어머니 친구분들과[내가 가까이 지내는 분들이다] 공유할 수 있다는 사실이 신이난다. 사실 페이스북보다 트위터가 나에겐 더 문젯거리이다.
여기에는 내가 일 중독이라는 핑계가 있다. 트위터에서 나는 내가 직접 선택한 기자들, 사업가들, 아니면 다른 엄마들 뿐만 아니라, 발리에서부터 리비아, 심지어 그랜드래피즈시에 사는, 140자 글 속에서 재미있고 똑똑해 보이는 사람들을 팔로우 한다. 나는 신문을 펼쳐 들기 전, 오늘 중요한 뉴스가 무엇인지 알기 위해 내가 팔로우 하는 사람들의 트윗을 먼저 확인한다. 종종 나는 소셜 네트워크의 대화를 통해 어떤 이야기를 기사로 쓸지 결정하기도 한다.
하지만 트위터상에서 내가 팔로우하는 사람들 중 다수가 [내 기사의] 지지층이 되기도 한다. 고로 나는 과거 오랫동안 가지지 못했던 친구들과 지지자들을 이제는 갖게 됐다.
과거 내가 조에게 내게 팬이 생겼다고 말하면, 조는 눈을 막 굴리다가, “네가 그렇게 믿는다면, 우리 둘 중 하나는 그렇게 믿는 셈이지”라는 표현을 다양한 식으로 말하곤 했다.
몇주전 나는 텍사스주 오스틴에서 열리는 산업기술 컨벤션 행사에 참석해야했고, 남편 조와 함께 동행했다. 오스틴에서의 첫날 밤, 같은 행사장에 들른 네명의 친구들을 우연히 만났고, 우리는 한참동안 수다를 떨었다.
조는 “정말 재밌는 친구들이네”라고 말하며, “어떻게 알게 됐는데?”라고 물었다.
나는 “트위터에서”라고 대답했다.
지난 금요일 밤 집으로 돌아온 나는 아이폰의 전원을 끄고 아이들을 잠자리로 데러다 준 후, 남편 조와 다른 것들에 신경쓰지 않은 채 집중하며 이야기를 나눴다.
조는 “나는 오스틴에서 당신이 온라인상에서 이야기를 나누던 친구들을 실제로 만난건 정말 좋은 기회였다고 생각해”라며, “그일을 계기로 인터넷에 몰두하는게 내가 생각했던 것 보다는 덜 멍청한 시간 낭비처럼 느끼게 됐으니까” 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하지만 문제는만약 당신이 그사람들과 전화를 이야기를 나눈다면, 최소한 나는 한 쪽의 이야기는 듣게 되지만, 당신이 온라인에서 그들과 대화한다면 당신은 온전히 컴퓨터 속으로 사라져 버린다는거야”라고 덧붙였다.
좋은 지적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내가 자라오는 동안 어머니는 친구 케롤과 린다, 낸시와 전화를 통해 대화했었다. 어머니 친구들의 전화를 내가 받을 때면, 나 역시 학교생활과 소프트볼에 대한 질문에 대답하며, 그들과 대화를 나누곤 했다. 또한 나는 어머니가 그들에게 누가 누구와 골프를 쳤고, 누가 파워 워킹을 할 예정인지에 대해 끊임없이 이야기하는 것을 들을 수 있었다. 그들의 우정어린 대화는 부엌 가득 울려퍼졌고, 그런 일들은 우리 가족사의 한 부분이기도 했었다. 이에 비해 내 온라인의 공간은 개인적이다. 우리가 다섯살짜리 우리 아이에게 늘 말하듯, 사람들 앞에서 비밀을 말하는 것은 그들의 감정을 다치게 할수 있다.
이는 트위터와 페이스북 친구들 앞에서 펼쳐놓은만한 적절한 주제처럼 보였다. 나는 온라인의 친구들에게 “당신은 온라인을 통해 소중한 인간관계를 만들고 유지해 본 적이 있는가?”하고 물었다. 그들은 인터넷 커뮤니티를 통해 그들의 삶이 얼마나 유복해졌는지를 풀어놓으며, 열성적으로 대답했다. 한 여성은 남자친구가 자신보고 온라인에 집착한다고 놀렸다는 이유로 헤어졌다고 말했다. 그녀는 “난 아마도 트위터를 사용하는 사람과 결혼해야만 할까봐요”라고 결론내렸다.
그날 밤, 조와 나는 나의 전자기기를 향한 나의 애착을 잘 알고 있는 가장 친한 친구들과 함께 저녁을 먹었다. 우리는 내 트위터 조사에 대해 이야기 나눴다.
나는 아이폰을 집으러 손을 뻗으며 “답변 중 일부를 보여줄께”라고 말했다.
하지만 나는 아이폰 화면을 오랫동안 응시했다.
그러자 조는 “껍데기만 남았군. 꼭 장식품같군. 그렇지 않아?”
우리 모두 웃음을 터트렸다.
결국 나는 남편에게 실제 인간관계가 온라인을 통해 형성될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보였다. 그러나 더 중요한 사실은 내 남편은 내가 그에게 더 많은 관심을 쏟아주길 바란다는 것이다. 내 여동생처럼 말이다. 또한 비록 내가 아이들과 함께 있을 때는 자제하려고 노력하지만, 아마도 아이들 한테도 자주”곁에 없는” 엄마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나는 앞으로도 계속 IT와 소셜 미디어의 전도사 역할을 해나갈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인터넷을 덜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하며, 이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이같은 기술이 내 에너지를 덜 소진할 방법을 찾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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